정치 지도자의 말은 천금(千金)과 같이 무거워야 한다. 지난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국회의원의 ‘사찰 통행세’ 관련 발언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정 의원은 절에 들어가지 않아도 해인사 3.5km 밖 매표소에서 통행세를 내고 들어가야한다며 불교계를 ‘봉이 김선달’로 매도했다. 이로 인한 성난 불심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화재보호법 제49조 1항은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는 그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 관람자로부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국가, 단체,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해인사는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 등 총 51개 문화재가 있고, 특히 600만 평의 가야산 해인사 일원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선릉·정릉 등 조선 왕릉의 경우 문화재청에서 관람료를 받는다. 도심 속의 푸른 녹지가 있어 산책 등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가서 왕릉은 안 보고 숲속 산책만 할 건데 왜 입장료를 받냐고 ‘도둑놈’이라고 욕하는 격이다. 정 의원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 국민들이 일본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등에 대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상을 역동적인 방 송을 통해 알려 온 (주)한강아라신문방송이 더 좋은 언론을 만들고자 ‘한강조은뉴스’ 신문을 발행합니다. 이를 위해 (주)한강아라신문방송 ‘한강조은뉴스’ 신문은 김포 한강신도시에 아라스튜디오를 마련, 첨단 방송 신문 편집 시스템을 갖추고 조직을 재정비했습니다. ‘한강조은뉴스’는 전국지를 지향하되 수도권을 중심으로 4월부터 격주로 발행합니다. ‘소통·화합·나눔’ 인류의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라는 사시를 내걸고 작지만 큰 언론으로서사명을다할것입니다. 지역사회의 이슈와 정보, 지식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정론·직필의 올곧은 자세로 ‘따뜻한 벗’과 같은 신문이 되겠습니다. 특히 사회복지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상담가의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품고, ‘깊이있는분석’을 통한 가치있는 기사를 제공하고 발로뛰며 현장을 찾아가는 성실함으로 책임있는 보도를 하겠습니다. 또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공론장 역할을 다해 밝은 미래를 제시하는 선도적 역할을 하겠습니다. 어느 정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민관이 소통하고 화합하여 바른 교육의 장, 소외계층의 대변인 역할과 어려운 소상공인들의 돕는 중재적 역할을 할 것
지하철을 이용한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유적지들과 곳곳에 파여 해쳐진 발굴터들을 피해 좁은 틈을 비집고 한 자리씩 차지한 마천루들이 즐비하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곳임을 등굣길 정도의 짧은 거리에도 알 수 있었다. 덕수궁, 정동(貞洞)길을 앞서 서소문길에 들어섰다. 배재학당(培材學堂) 앞을 지나며 ‘인재를 키운다’는 뜻을 담은 배재의 교패를 마음에 담았다. 정동교회를 세운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 대한제국의 지원을 받아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그 이듬 해에 인근에 세워진 이화학당이 민족의 여성지도자들을 양성하였다면 배재학당은 독립협회와 더불어 민족의 신진세력을 양성할 목적으로 고종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근대교육은 1894년 갑오개혁을 단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신분제도와 과거제도의 폐지, 그리고 인재양성을 위한 신교육의 이념을 담고 1895년에 ‘소학교령’이 제정 반포되었다. 고종의 특별조서를 통해 “덕육(德育), 체육(體育), 지육(知育)을 향상시켜 국가 중흥의 강력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덕이 재주보다 많은 사람을 군자라 하고 재주가 덕보다 많은 사람을 소인이라고 치부해 버린 유교문
최근 한국 교계에서 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본질 성격상 모든 교회는 지역교회이고 전래 초기에 이 땅의 교회들은 지역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교회 이름은 지역 이름에 숫자를 붙여서 신의주 1교회, 2교회, 3교회 식으로 만들어졌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지역을 넘어 온 나라, 그리고 전 세계를 품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역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게 되었다. 더 넓은 세상을 품게 되면서 정작 교회가 터하고 있는 지역을 소홀히 여기게 되는 모순을 낳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지역교회라는 말은 명목상의 의미일 뿐 실제적인 의미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미션얼 처치(missional church)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선교가 꼭 해외에 나가서 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에서도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션얼 처치는 선교를 교회의 본질로 이해하며, 교회 자체가 이미 세상에 보냄 받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이고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과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선교를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